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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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나무위키
https://namu.wiki/w/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08-18 · 2013년 11월 유럽연합 (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잠정 중단으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탄핵과 도피,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등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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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잠정 중단으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탄핵과 도피,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등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내전 상태와도 같은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배경에는 유럽연합과 협력 좌절과 러시아와 경제지원협약 체결로, 그동안 독단적이며 권위적으로 나라를 운영해 온 야누코비치 정권에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3. 전개[편집]
3.1.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는 크림 반도를 러시아에게 빼앗겨 버렸다. 크림 자치공화국은 주민투표를 통해서 크림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 러시아로 편입해버렸다. 거기에 도네츠크를 비롯한 러시아계 다수 지역까지도 독립요구를 하며 시위대가 무장하고 군복차림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진압한다고 투입된 우크라이나군이 되려 무장 시위대에게 포위되며 무기를 넘겨주고 굴욕적으로 탈탈 털리면서 철수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함부로 러시아계 무장 시위대를 건드리다가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1]
아래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현재 정황을 적절하게 잘 설명한 만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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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RAINE EN DANGER !
우크라이나가 위험하다!
프랑스의 시각으로 본 우크라이나 위기.
현재 유로마이단의 가장 큰 원인은 '동·서부의 다른 지역적 정체성'이라기 보다는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역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추긴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적어도 레오니드 쿠치마 시절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오던 우크라이나 정치계는 친서방이라는 개혁파와 친러시아라는 보수파 프레임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고, 여기에 지역적인 이권요소와[2] 러시아,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의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우크라이나의 지역갈등은 극도로 치달았고, 특히 미국에서는 러시아 견제를 위해 친서방세력을 이용하고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내 친러세력을 이용하면서 결국에는 극단적인 정치 대립을 낳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EU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을 해 왔지만, 심각한 경제위기와 뿌리깊은 지역 분할구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분열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위기에 직면해 있다. 비록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와 EU가 2014년 3월 21일 협력협정의 정치 부문에 서명하고 5월 대선 이후 경제 부문에도 서명하기로 합의했지만, 현재 같은 내부의 고질적인 갈등이 지속되는 한 EU 가입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3.2. 돈바스 전쟁[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돈바스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대선 전까지 우크라이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3] 과거 경제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했던 포로셴코가 강한 리더십으로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면 나락으로 떨어진 우크라이나 경제도 회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듯 했으나 크림 병합의 사례를 보면서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 러시아 측은 뒤이어 우크라이나 동부에도 위장부대를 투입하여 반우크라이나 봉기를 일으켰다.
러시아와 친러 반군은 갈팡질팡하는 우크라이나군을 손쉽게 찍어누르며 빠르게 동부 지역을 석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크림 반도라면 몰라도 동부 지역은 러시아어 사용자들조차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뿌리내린 곳이었으므로, 예상외로 러시아군과 친러 반군은 소수의 동조자들만 확보하고 결국 돈바스 이외 지역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경제적 중심지인 돈바스를 결코 잃을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가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군사력을 적극 투입해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돈바스는 친러 반군과 러시아군, 우크라이나군 간의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심지어 러시아의 침공에 놀란 동부(돈바스 제외)도 반러로 돌아서면서[4]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이탈해버렸다.
2014년 말기에 다다르며 경제 제재에 따른 서방의 압박이 구체화되자 러시아는 점점 동부 개입에 소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한 때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 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 중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기사 또한 정부군을 상대로 호전한 반군 세력이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을 잃으면서 전선이 고착되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의 개입에 대해 경제제재로 일관하고 있는 서방세계의 대응이 미약하고 별 효과가 없다. 원래 제재는 나라가 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을 상대로는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러시아인들 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나라 국민들도 드물다. 러시아의 경제 난황은 세계적 경기 불황으로 인해 러시아 역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2012년 GDP 증가율이 3.4%로 낮아졌던 러시아는 심지어 2013년엔 GDP 증가율이 1.3%까지 추락했다. 서방 측의 경제제재는 단지 러시아를 조금 더 불편하게 할 뿐이다.
다만, 서방 측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당장 외국자본은 탈출하는데다 시중 은행, 기업들이 달러, 유로화 등의 외화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채무를 갚기 위해 이들이 외화 구하기에 나서면서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다. 러시아는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90년대 말 동남아 및 대한민국의 1997년 외환 위기와 비슷한 상황. 반면 러시아 전체수출의 65%, 재정수입의 50%를 담당하는 자원산업 쪽은 영 경기가 좋지 않다. 2014년 현재 우크라이나의 동부위기, 이라크 내전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는 되려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경제위기로 서유럽 등지에서 에너지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다 이런저런 정치적·경제적 이유[5]로 OPEC에서도 석유를 크게 감산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예상 수요 대비 생산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셰일가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서유럽 역시 러시아의 반복적인 밸브 잠그기에 질려 에너지 수입원 다각화에 나서면서 러시아의 자원수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다만 러시아에서는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 적극적으로 제재를 돌파할 시장을 찾는지라 제재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일단 현재로서는 적어도 서방이 대소련 경제봉쇄와 같은 효과를 러시아에게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 입장에서는 현재 서방의 경제제제와 저유가가 겹치면서 장기간동안 경기침체가 예정된 상황이다.
현재 사태는 민스크 협정을 계기로 현상황을 유지하는 것(Status quo)으로 잠정 결론이 났지만,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모두 현상황에 만족하지 않는지라,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 가능성은 동부지역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본격적인 위기 시작 후 서방국가들이 크림 병합과 동부 개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였고, 때마침 시작된 저유가로 인해 가즈프롬 등 러시아 국영 기업들 역시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특히 석유같은 자원경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도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단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와 돈바스의 친러 반군들의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시나리오는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나 조지아의 압하스와 남오세티야, 아제르바이잔의 아르차흐와 같이 자국 내부에 분쟁 상태의 미승인국을 안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일단 유력해보인다. 크림 반도와 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 국가를 묵인, 방치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민스크 협정이 맺어진 이후에도 현재까지 돈바스에서 군사적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6] 서방과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 달려있다.
3.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러시아-우크라이나
결국에는 2022년 2월 24일, 국제사회가 가장 많이 우려하던 최악의 시나리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면전이 시작되고야 말았다.
4. 둘러보기[편집]
우크라이나 국장
우크라이나 관련 문서
Україна
[1] 당장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도 조지아 입장에서는 분쟁 중이던 자국의 영토(압하지아, 남오세티야)에서 벌이는 군사작전 중 러시아군이 공격 받았다는 이유로 전면공격을 받았다. 왜 크림 사태 때 우크라이나군이 엄밀히 말해 반란군에 속하는 민병대와 적극적으로 교전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2] 농업이 발달한 서부가 친서방 성향이 강하고, 공업지대가 발달한 동부가 친러 성향이 강한 것은 단순히 역사적 정체성(근원을 따지고 보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최대강역에 우크라이나 서부가 포함된 점, 더 이전으로 가면 몽골의 러시아 침략에 우크라이나의 해방이 다른 루스 지역보다 더뎠다는 점)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서부 입장에서는 농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수출에 용이한 유럽연합과 경제협력(유럽시장의 관세를 낮추는 자유무역협정 등)을 선호할 것이고, 소련 시절 건설된 대규모 중공업 공업단지를 운영해야 하는 동부 입장에서는 중공업 생산품의 주 소비자인 러시아와 협력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의 항공사인 안토노프만 해도 자사 주기종인 An-124의 주고객이 러시아 공군과 볼가-드네프르 항공이었다.) 즉, 민족적 감정이나 논리 이전에 당장 먹고 사는 경제적 이권이 걸린 문제였기에 서로 치열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유사하게, 남북전쟁에서는 영국에 대한 상품작물의 편리한 수출을 위해 자유무역과 저관세를 원한 남부동맹과 공업발달을 위해 보호무역과 고관세를 원한 북부의 갈등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노예제 폐지가 심지어 노예를 가지지 못했던 남부의 백인들에게도 자신들의 사회적 우월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바 있는 만큼, 전쟁을 경제적 이해로만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지 군사적 개입 등으로 압박하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현이었다.
[4] 놀랍게도 네오 나치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무수한 욕을 먹던 아조프 연대 인원의 과반이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 러시아어 사용자들이다.
[5] 석유값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떠오르는 원유 주요 소비국인 중국을 고객으로서 잡아두기 위해 원유 수출량을 줄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6] 중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전투만 없을 뿐 엄연히 전투는 계속되는 상황이다.
https://namu.wiki/w/%EB%9F%AC%EC%8B%9C%EC%95%84-%EC%9A%B0%ED%81%AC%EB%9D%BC%EC%9D%B4%EB%82%98%20%EC%A0%84%EC%9F%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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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8 · 2013년 11월 유럽연합 (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잠정 중단으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탄핵과 도피,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등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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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유럽연합(EU)과의 협력협정 체결 잠정 중단으로 시작된 대규모 시위를 계기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탄핵과 도피,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등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내전 상태와도 같은 국가적 위기에 처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촉발한 배경에는 유럽연합과 협력 좌절과 러시아와 경제지원협약 체결로, 그동안 독단적이며 권위적으로 나라를 운영해 온 야누코비치 정권에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3. 전개[편집]
3.1.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는 크림 반도를 러시아에게 빼앗겨 버렸다. 크림 자치공화국은 주민투표를 통해서 크림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 러시아로 편입해버렸다. 거기에 도네츠크를 비롯한 러시아계 다수 지역까지도 독립요구를 하며 시위대가 무장하고 군복차림으로 나서고 있다. 이를 진압한다고 투입된 우크라이나군이 되려 무장 시위대에게 포위되며 무기를 넘겨주고 굴욕적으로 탈탈 털리면서 철수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함부로 러시아계 무장 시위대를 건드리다가 러시아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1]
아래는 우크라이나 위기의 현재 정황을 적절하게 잘 설명한 만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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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RAINE EN DANGER !
우크라이나가 위험하다!
프랑스의 시각으로 본 우크라이나 위기.
현재 유로마이단의 가장 큰 원인은 '동·서부의 다른 지역적 정체성'이라기 보다는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역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부추긴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적어도 레오니드 쿠치마 시절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오던 우크라이나 정치계는 친서방이라는 개혁파와 친러시아라는 보수파 프레임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고, 여기에 지역적인 이권요소와[2] 러시아,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의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우크라이나의 지역갈등은 극도로 치달았고, 특히 미국에서는 러시아 견제를 위해 친서방세력을 이용하고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내 친러세력을 이용하면서 결국에는 극단적인 정치 대립을 낳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EU 가입을 지속적으로 추진을 해 왔지만, 심각한 경제위기와 뿌리깊은 지역 분할구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오히려 국가분열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위기에 직면해 있다. 비록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와 EU가 2014년 3월 21일 협력협정의 정치 부문에 서명하고 5월 대선 이후 경제 부문에도 서명하기로 합의했지만, 현재 같은 내부의 고질적인 갈등이 지속되는 한 EU 가입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3.2. 돈바스 전쟁[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돈바스 전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대선 전까지 우크라이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3] 과거 경제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했던 포로셴코가 강한 리더십으로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면 나락으로 떨어진 우크라이나 경제도 회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듯 했으나 크림 병합의 사례를 보면서 우크라이나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본 러시아 측은 뒤이어 우크라이나 동부에도 위장부대를 투입하여 반우크라이나 봉기를 일으켰다.
러시아와 친러 반군은 갈팡질팡하는 우크라이나군을 손쉽게 찍어누르며 빠르게 동부 지역을 석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크림 반도라면 몰라도 동부 지역은 러시아어 사용자들조차 자신들이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뿌리내린 곳이었으므로, 예상외로 러시아군과 친러 반군은 소수의 동조자들만 확보하고 결국 돈바스 이외 지역으로 진출하지 못하는 등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경제적 중심지인 돈바스를 결코 잃을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가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군사력을 적극 투입해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돈바스는 친러 반군과 러시아군, 우크라이나군 간의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심지어 러시아의 침공에 놀란 동부(돈바스 제외)도 반러로 돌아서면서[4]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이탈해버렸다.
2014년 말기에 다다르며 경제 제재에 따른 서방의 압박이 구체화되자 러시아는 점점 동부 개입에 소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한 때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 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 중임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기사 또한 정부군을 상대로 호전한 반군 세력이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을 잃으면서 전선이 고착되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위기 상황에서 러시아의 개입에 대해 경제제재로 일관하고 있는 서방세계의 대응이 미약하고 별 효과가 없다. 원래 제재는 나라가 크고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을 상대로는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 그리고 러시아인들 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나라 국민들도 드물다. 러시아의 경제 난황은 세계적 경기 불황으로 인해 러시아 역시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미 2012년 GDP 증가율이 3.4%로 낮아졌던 러시아는 심지어 2013년엔 GDP 증가율이 1.3%까지 추락했다. 서방 측의 경제제재는 단지 러시아를 조금 더 불편하게 할 뿐이다.
다만, 서방 측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당장 외국자본은 탈출하는데다 시중 은행, 기업들이 달러, 유로화 등의 외화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채무를 갚기 위해 이들이 외화 구하기에 나서면서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다. 러시아는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을 지속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90년대 말 동남아 및 대한민국의 1997년 외환 위기와 비슷한 상황. 반면 러시아 전체수출의 65%, 재정수입의 50%를 담당하는 자원산업 쪽은 영 경기가 좋지 않다. 2014년 현재 우크라이나의 동부위기, 이라크 내전에도 불구하고 국제 유가는 되려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아무래도 경제위기로 서유럽 등지에서 에너지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다 이런저런 정치적·경제적 이유[5]로 OPEC에서도 석유를 크게 감산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예상 수요 대비 생산량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셰일가스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국의 석유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이고, 서유럽 역시 러시아의 반복적인 밸브 잠그기에 질려 에너지 수입원 다각화에 나서면서 러시아의 자원수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다만 러시아에서는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 적극적으로 제재를 돌파할 시장을 찾는지라 제재가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렵다. 일단 현재로서는 적어도 서방이 대소련 경제봉쇄와 같은 효과를 러시아에게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 입장에서는 현재 서방의 경제제제와 저유가가 겹치면서 장기간동안 경기침체가 예정된 상황이다.
현재 사태는 민스크 협정을 계기로 현상황을 유지하는 것(Status quo)으로 잠정 결론이 났지만,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모두 현상황에 만족하지 않는지라, 무력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 가능성은 동부지역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본격적인 위기 시작 후 서방국가들이 크림 병합과 동부 개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였고, 때마침 시작된 저유가로 인해 가즈프롬 등 러시아 국영 기업들 역시 충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듯하다. 특히 석유같은 자원경제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러시아 경제에도 침체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일단 현재 우크라이나 정부와 돈바스의 친러 반군들의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장 유력해 보이는 시나리오는 몰도바의 트란스니스트리아나 조지아의 압하스와 남오세티야, 아제르바이잔의 아르차흐와 같이 자국 내부에 분쟁 상태의 미승인국을 안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일단 유력해보인다. 크림 반도와 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 국가를 묵인, 방치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민스크 협정이 맺어진 이후에도 현재까지 돈바스에서 군사적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6] 서방과 우크라이나,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 달려있다.
3.3.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러시아-우크라이나
결국에는 2022년 2월 24일, 국제사회가 가장 많이 우려하던 최악의 시나리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면전이 시작되고야 말았다.
4. 둘러보기[편집]
우크라이나 국장
우크라이나 관련 문서
Україна
[1] 당장 남오세티야 전쟁에서도 조지아 입장에서는 분쟁 중이던 자국의 영토(압하지아, 남오세티야)에서 벌이는 군사작전 중 러시아군이 공격 받았다는 이유로 전면공격을 받았다. 왜 크림 사태 때 우크라이나군이 엄밀히 말해 반란군에 속하는 민병대와 적극적으로 교전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2] 농업이 발달한 서부가 친서방 성향이 강하고, 공업지대가 발달한 동부가 친러 성향이 강한 것은 단순히 역사적 정체성(근원을 따지고 보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최대강역에 우크라이나 서부가 포함된 점, 더 이전으로 가면 몽골의 러시아 침략에 우크라이나의 해방이 다른 루스 지역보다 더뎠다는 점)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서부 입장에서는 농업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리적으로 수출에 용이한 유럽연합과 경제협력(유럽시장의 관세를 낮추는 자유무역협정 등)을 선호할 것이고, 소련 시절 건설된 대규모 중공업 공업단지를 운영해야 하는 동부 입장에서는 중공업 생산품의 주 소비자인 러시아와 협력 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의 항공사인 안토노프만 해도 자사 주기종인 An-124의 주고객이 러시아 공군과 볼가-드네프르 항공이었다.) 즉, 민족적 감정이나 논리 이전에 당장 먹고 사는 경제적 이권이 걸린 문제였기에 서로 치열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유사하게, 남북전쟁에서는 영국에 대한 상품작물의 편리한 수출을 위해 자유무역과 저관세를 원한 남부동맹과 공업발달을 위해 보호무역과 고관세를 원한 북부의 갈등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노예제 폐지가 심지어 노예를 가지지 못했던 남부의 백인들에게도 자신들의 사회적 우월성을 공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바 있는 만큼, 전쟁을 경제적 이해로만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3]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지 군사적 개입 등으로 압박하겠다는 노골적인 의사표현이었다.
[4] 놀랍게도 네오 나치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무수한 욕을 먹던 아조프 연대 인원의 과반이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 러시아어 사용자들이다.
[5] 석유값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떠오르는 원유 주요 소비국인 중국을 고객으로서 잡아두기 위해 원유 수출량을 줄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6] 중장비를 동원한 대규모 전투만 없을 뿐 엄연히 전투는 계속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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