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ity 기독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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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Christianity--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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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its most basic, Christianity is the faith tradition that focuses on the figure of Jesus Christ. In this context, faith refers both to the believers' act of trust and to the content of their faith. As a tradition, Christianity is more than a system of religious belief.
Christianity | Definition, Origin, History, Beliefs, Symbols ...
https://en.wikipedia.org/wiki/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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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γὰρ Οὕτως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ὰ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기독교(基督敎),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2] 또는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신자 수는 모든 교파[3]를 합쳐 약 24억 명에 달하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이며 2위는 이슬람교(19억)일 정도이다. 기독교는 특히 서양을 중심으로 인류의 사회 및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종교[4]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로 꼽힌다.
전 세계가 통용하는 역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서력기원 이며,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구권 국가 구성원의 과반수가 기독교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슬람 신자 수가 증가하고, 무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알고 있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선진국에서는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개발도상국에서 신자 수가 증가하고 있어서 전체 비율은 거의 일정하다.
기독교의 경전은 성경으로, 신약과 구약으로 구성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따르는 절대자의 계시의 전통과 역사성을 표방하였다. 때문에 학술적으로 유대교와 나중에 발생한 이슬람까지 포함한 세 종교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신학과 상당수 기독교 종파의 전통주의•근본주의 신학에서는 학술적 견해와는 달리 이슬람에 대해 '아브라함 계통의 계시종교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일단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슬람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인정했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이 자체만으로 가톨릭측에서이 이슬람에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톨릭 입장에선 이슬람교 역시 자신들이 파생된 낡은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에 대한 올바른 교리가 없는, 즉 구원이 불확실한 '불완전한 아브라함계 종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유대교와의 차이는 크게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야훼와 동급인 신으로 보고 신약성경을 정경(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으로 인정하지만, 유대교는 소수의 메시아주의 분파를 제외하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랍비 중 하나로 본다. 때문에 유대교 경전인 타나크가 기독교 기준에서의 구약성경으로 불리는 것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히브리 성경의 권위를 매우 높게 보고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신약성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을 가질지언정 본성에서는 동일한 유일신으로 본다. 주의할 점은 성부=성자=성령이 아니며 성부=하느님, 성자=하느님, 성령=하느님이고 하느님은 한 분이라고 보아야 한분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삼위일체론이라 한다. 삼위일체론에 따라 하느님과 동일 본질을 가진 한 예수를 신으로 믿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기독교 종파가 삼위일체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신이 아닌 수많은 예언자 중 하나로만 보며 예수보단 그 수많은 예언자 중 최후의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더 중시한다. 알라(한국어 번역시 하느님)라는 존재를 유일신으로 믿는다는 점에서는 일신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독교가 유대교, 이슬람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과 어떻게 인정하느냐 하는 관점이다. 물론 세세하게는 그 말고도 차이점들이 아주 많다.
흔히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로 보고 "동양"의 유교/불교 등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지만, 기독교의 발상지는 서아시아이며 서아시아는 엄연한 동양이다. 동양에서 발원한 기독교가 고대 유럽 세계를 통해 전파된 것. 즉 이분법적으로 기독교를 서양 종교라고만 볼 수는 없다.
2. 명칭[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기독교 문서의 8.2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기독교(그리스도교)는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 네스토리우스파 등 예수를 메시아(그리스도)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도 어원
기독교의 '기독'은 그리스도의 한자 음역 표현인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유래하였다 나아가 개화기 문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야소기독(耶蘇基督)'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혹은 일제강점기 이전 ~ 초반부를 다룬 시기의 소설들에도 "'야소'를 믿는답시고"라는 식의 표기가 종종 보인다. 그러므로 기독교(기리사독교)와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는 명백한 동의어다.
한편,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곧 개신교라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한국에서 이런 혼동이 유독 심하긴 하나 중국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있고, 서양에서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 문화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어느 정도 세속화되긴 했어도 개신교가 문화적 기반 노릇을 했던 영국, 네덜란드, 북유럽 등에서도 자신들의 종교를 지칭하는 표현을 헷갈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와 기독교를 동일하게 여기며, 천주교(가톨릭) 및 정교회는 (기독교가 아닌) 별도의 종교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봐도 기독교라는 공통분모 아래에서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등의 종파가 나뉜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 및 정교회는 기독교가 아니라는 인식은 그릇된 상식임에 틀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라는 어휘가 갖는 사회적 선입관 때문인지, 여전히 가톨릭 등에서는 직접적으로 '기독교'라는 어휘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고 '그리스도교' 등으로 변형하여 부르는 편이고, 개신교 단체에서 '기독교'를 선호하는 편이다.
기독교
종파 명칭
한국에서의 대중적인 호칭[5]
대중적인 관련 상징물
교파
개신교
(프로테스탄티즘)
기독교[6]
성경, 교회[7], 예배, 목사, 장로, 권사 등
성공회 [8],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루터교회 등
천주교
(가톨릭 교회)
천주교, 가톨릭, 카톨릭
성경, 성당, 미사, 묵주, 수녀, 신부, 추기경, 교황 등
단일 교파
정교회
(동방 정교회)
정교회, 그리스 정교[9]
성경, 성당, 성찬예배 등
단일 교파
이에 일상 속에서 개신교 신도를 으레 기독교 신도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어의 올바른 뜻을 고려할 때 '기독교 신도'는 모호한 분류다. 기독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고, 모두 일상적으로 '기독교'라고 뭉뚱그려 지칭하기엔 각자만의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10] 하지만 일반적인 오해에 따라 기독교를 개신교와 동일시한다면 기독교 신도란 '개신교 신도'에 한정된 표현이기 때문에 그리 모호하지 않긴 하다.[11]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곧 개신교라 오해하는 경향을 염두에 두고, 기독교를 지칭할 때는 오히려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로 풀어서 말하곤 한다. 특히 종교적 중립을 중시해야 하는 교과서에서는 크리스트교라는 명칭이 주로 쓰인다. 나아가 신자들 중에서도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믿는 종교'라는 의미가 더 확실히 와닿기도 하고, '기독교'를 제외하면 단어에 '그리스도' 대신 '기독'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12]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
3. 교리[편집]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합의안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기독교 교리부분을 수정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신자의 구원을 위함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써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모든 사람은 죄로 향하는 본성을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를 벗어나지 못하여 현세의 삶에서는 죄많은 삶으로 인해 고통받고, 사후에는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다.[13][14][15] 인간의 부족한 능력만으로 그 죗값을 다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운명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움과 죄의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죄의 용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죄의 대가는 사후의 영원한 지옥벌이다.[16][17] 그러나 하느님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인류가 지옥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보내 수난과 죽음을 당함으로써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였다.[18] 따라서 죄값은 이미 전부 치러졌으나, 모든 인류가 자동으로 구원받게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내용을 알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여, 여전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음으로써, 인간의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신자가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가 가르친 계명을 실천함으로 따르는 삶의 자세, 죄의 포기, 선한 마음가짐 등의 선행이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1.예수를 믿고 2.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사람은 죄를 용서받으며 구원받아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19] 예수의 제자들은 이러한 기쁜 사실인 복음을 예수의 행적과 삶, 그리고 이를 계승한 교회,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였다.
믿고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이 믿음을 통해서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회개의 삶을 실천해야만 한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믿고,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한 계명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면 그 하느님의 은총(=예수님의 도움, 성령의 작용)에 힘입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새 삶을 살아갈 은총의 원동력을 얻게 되며, 이를 통해 현세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사후에는 지옥행을 면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20] 이것이 주류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또한, 단순히 믿음 이후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독교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시작,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 역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21] 또한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며, 모든 사람들이 은총을 통해 믿음을 갖고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인간은 원죄(악한 경향)에 물든 자유의지에 때문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으로 모든 인류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며, 동시에 이 세상은 여전히 원죄에 의해 초래된 죄와 악이 상당히 퍼져 있다는 것, 또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죄의 악한 성향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죄와 악, 하느님에 대한 불신을 피해 믿음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한편, 기독교는 2000년이나 되는 긴 역사 동안 무수한 분파들이 갈라져 나옴에 따라 현재는 2만 개(...)나 되는 흠좀무한 수의 교파들[22]이 있으며 이에 따라 각 교파의 교리나 성경 해석도 조금씩 상이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교파에서 동일하게 믿고 있는 신학적 믿음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천지창조
구세주(메시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동정녀에게서의 출생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천국의 거주민이 될 자격을 얻으며, 영생(영원한 삶)을 얻을 자격이 주어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셋째 날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올 것)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승천 및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교회의 존재 및 교회론적 교리[23]
성령의 존재와 성령을 통한 영적인 각종 은총의 존재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로서는 한분이시며 위격으로는 세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
인간 영혼의 존재와 천국/지옥으로 대표되는 사후세계의 존재
마지막 때의 모든 인간의 부활과 예수 재림 후 최후의 심판에 따른 영원한 판결, 그리고 하느님 나라(천국)의 완성
이 주요 교리는 이를 총 12개의 신조로 요약한 사도신경, 그리고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이 교리들을 믿을 교리(신덕 도리)라고 해서,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믿고 고백하여야 하는 요소로 본다. 대다수 개신교 교파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이나, 사도전승 문제[24]나 예배 관습 등 세부적인 교리에서는 교파간의 많은 차이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기독교 내에서 종교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기독교의 교파 간의 교리 차이에 대한 견해는 첨예하게 대립된 적도 있다. 그리고 다른 교파간 관계는 교회일치운동에도 불구하고 원활하지 않은 편이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교도권 중심의 성경 해석이 성경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며 마태복음 28장 19~20절, 베드로 1서 1장 20~21절 등의 성경구절을 근거로, 성직자만이 아닌 일반 평신도 역시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개신교가 수많은 교파들로 갈라져 있는 원인이며 수없이 많은 갖가지 이단들이 발생한 주요 원인이다.
3.1. 사랑관[편집]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레위기 19:18(공동번역성서)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한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3:8~10(공동번역성서)
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25]
요한의 복음서 13:34~35(공동번역성서)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1~13(공동번역성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1서 4:18(공동번역성서)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공동번역성서)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마태복음 22:35-40(공동번역성서)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 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르코의 복음서 12:28-31(공동번역성서)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10장 25~37절(공동번역성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호세아 6장 6절(공동번역성서)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26]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7]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오의 복음서 19:16-24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오의 복음서 25장 31절 - 46절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한복음 3:16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8절(공동번역성서)
이어서,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하신 계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로 사랑하라"이다. 이는 물론 절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 온정적인 박애정신인 아가페적 사랑이다. 예수는 성경에서 여러 번에 걸쳐 사랑을 실천할 것을 직접 강조하였다. 단순히 가족과 친구를 아끼라고 한 것이 아니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하였다. 누가 이웃인가 하는 질문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자기와 한 몸인 것처럼, 예수 본인을 직접 만난 것처럼 대하라고 가르쳤다. 즉, 온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만을 훗날 천국에서 자신의 제자로 대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였다.[28] 이 때문에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의 종교'로 알려져있다. 만약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실제로는 믿고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 또는 교파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이다. 사랑의 실천이 따라오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단, 여기서 정말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기독교적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어떤 행동을 하던지간에 무작정, 무제한적인 관용을 베푸는 식의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다니면서도 양심이 무뎌져버려 그것이 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사랑'이나 기독교 외적인 세속적 가치관을 내세워 이들의 죄의 상태를 침묵하거나 죄인들의 죄짓는 행위를 묵인/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라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보편적 교리에 입각하여 지적하고, 또한 죄인들을 죄에서 벗어나게끔 기도하고, 실제적으로도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 선행과 사랑의 강조는 인간의 노력을 통한 사랑의 실천만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는 여전히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 온전히 의롭고 선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도움 없이 인간의 노력(선행이라거나, 이웃사랑이라거나)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죄있는 인간은 하느님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하며, 스스로 약하고 모자람을 인정하고, 믿음과 교리를 반드시 받아들여 하느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믿음과 교리를 따르는 삶, 그리고 사랑의 가르침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 은총이자 도움이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면서, 믿음과 구원을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시 예수와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서로 사랑하라는 아가페적) 계명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교리상으로는 십계명을 두고 이를 공통적으로 지킨다.[29]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같은 비신자들에게도 유명한 원칙 역시 이웃사랑의 계명이 확장된 것이다. 또한 이를 따라 온 인류에 대한 공동체 의식, 즉, 공동선,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과 인류애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성경 해석과 교리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이단논쟁을 수반해왔고 지금도 수반하고 있다. 때문에 전통적인 교파들, 특히 보편교회에선 기독교내에서 성직자가 아닌 일반신자의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나 교리해석은 금지되고 있는 편이다. 다만 개신교는 다수의 분파가 난립하며 여러 성경 해석이 있는 편이다.
3.2. 주요 예식(성사)[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7성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독교에서는 오랜 역사 전통과 성경 기록에 의거해 여러 예식들을 확립시켰으며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주요한 예식들은 다음과 같다.
성사[30]
세례: 예수를 하느님이자 자신의 죄악에서 구원할 인격적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자로 재탄생하는 예식이다. [31][32]
성만찬: 예수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포도주와 빵(떡)을 나누어 먹음으로서 구원을 확신하고 공동체적 동일감을 고양하는 예식이다. 예수가 자신의 피와 살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을 때, 예수를 따르던 많은 유태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떠났듯이[33], 성찬예식은 일반적인 비기독교도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예식이다.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에서는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성찬 제병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으로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성변화설을 주장한다. 자세한 것은 성체성사와 성만찬 문서를 참고할 것. 또한 타교파에서 받은 세례 등을 인정한다. 세례성사 참고.
가톨릭,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에서 인정하는 예식 [34]
견진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신품성사) - 보편교회의 성직자를 양성하는 성사. 신자가 보편교회의 사제 및 수도자, 기혼자[35]가 되기 위한 거룩한 소명을 받아 가지는 것을 '성소'(聖召 = 거룩한 소명)라고 부른다. 다만, 수도자는 성품성사를 받는 것이 아닌 자체적인 과정을 통해 입회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성사를 받지 않은(=성직자가 아닌) 수도자도 있다. 수도자 생활을 하면서 추가로 신학과정을 공부한 뒤 성품성사도 받아서 성직자가 된 수도자는 수도 사제(수사 신부)[36]라고 불린다.
병자성사 - 죽어가는 사람,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교회의 이름으로 베푸는 성사. 축성된 성유를 바르고[37][38]환자의 쾌유와 은총을 빈다. 원칙적으로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나서 진행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지막 고해를 한다면 이를 통해 죽기 전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굳이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이 일생에 한번 하는 성사가 아니라, 큰 수술 등을 앞두거나 병이 재발하거나 할 경우에 여러번 받는 경우도 있다.
공교회 전통이 남아있는 개신교 교파인 성공회는 위의 보편교회 전용 예식을, 성사는 아니지만 성사에 준하는 예식이라 하여 '준성사', 또는 '성사적 예식'이라 부른다. 이 다섯 준성사를 고대 초기 교회로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존중하고 시행하기는 하나,[39][40] 공식 예식에서는 세례와 성찬례만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 신자가 큰 죄를 지었을 때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도 괜찮고, 그냥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 개신교식 개인 회개만을 통해서도 고해성사 필요없이[41] 똑같이 용서받는다고 본다. 어차피 주님 앞에 용서를 비는 것에, 긍휼을 구하는 진심만 있다면 형식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
3.3. 기도문[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기독교/기도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모든 기독교 교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도문으로 주님의 기도(주의 기도/주기도문)가 있다. 각 교파별로 사용하는 다양한 기도문에 대해서는 상세 내용 참조.
3.4. 종교관[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신학/기독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다. 즉, 자신들이 섬길 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타 종교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을 띠고 있다.[42]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구원의 주체로 믿는 데서부터 시작된 종교이며, 이후 시간이 흘러 서기 4세기 이후 여러번의 종교적인 논의 끝에 예수가 유대교의 야훼와 동일한 존재로 설파되었다. 즉, 삼위일체론을 정설로 채택한 주류 교단들은 예수와 성부, 그리고 성령의 세가지 페르소나가 야훼라는 하나의 본질 및 본성을 지닌 유일한 하느님으로 믿는다. 다만 예수의 경우 특이하게도 인간의 본질 및 본성도 지닌다. 자세한 것은 삼위일체론 참고.
일반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며 예수를 통한 구원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로 분류되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야훼만을 신으로 섬기면 유대교 계통으로 분류한다. 반면 이슬람의 경우에는 예수를 유대 민족의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도, 예수의 신격이나 예수를 통한 구원을 인정하지 않고 무함마드 이전의 일반적인 예언자 중 하나로 본다는 특징이 있다.
삼위일체 교리상으로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 한 신이지만, 예수와 구약에서 묘사된 신의 성격이나 강조점은 사실상 차이가 많이 난다. 학문적인 논의에 의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약의 신은 승리와 정의의 신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적을 파괴하고 불복종한 자들을 처벌하는 신이며 이적의 규모도 거의 범 지구적, 재해적인 규모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와 같다'라고 칭한 바와 같이 유대인의 민족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43]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와 희생의 신으로서 적을 용서하고 인류를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신이다. 이적의 규모도 국지적이며 평화적이다. 특히 예수 신앙은 서유럽(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범세계적인 신의 성격을 보인다. 이처럼 예수와 야훼의 성격상 차이점이 극명한 관계로 역사적으로 마르키온 등 몇몇 신학자들은 예수의 "아버지"가 야훼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가 초기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된 적도 있다.[44]
그러나 절대 다수의 주류 기독교에서는 예수와 구약에서 묘사되던 신의 성향상 차이점은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정설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구약의 하느님이 전반적으로 예수보다 전투적이며 민족신에 가까운 모습 등으로 묘사된 것은 사실이라도, 후대로 갈 수록 구약의 하느님은 예수가 보여주던 모습과 비슷한 모습도 보여준다.[45] 이를테면 구약 중 시기적으로 비교적 후대의 책인 요나서에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후려패던 아시리아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예언자 요나에게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탈출기에서 이집트가 참혹한 재앙을 맞는 것과 분명하게 대조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후대의 예언서들에서도 일벌백계의 하느님이라기보다는 끝까지 회개를 기다리고 죄인들이라도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을 바라는 하느님으로서의 면모가 더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에제키엘서.
기독교의 세계관은 시작과 끝이 직선적인 세계관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의 재림으로 세상이 종말을 맞는다고 믿는다.
즉, 예수와 성부, 성령이 천지를 창조한 주체이며,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의 위치에 서는 존재로 간주한다. 그리고 성령이 성부(또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으므로 예수와 성령은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하였으며 함께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46]
성경의 예언에 따라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러 다시 올 것(재림)을 믿으며, 이때 새 하늘과 새땅이 펼쳐지기에 앞서 요한계시록에 따라 세상의 악한 자들과의 전쟁과 예수가 주권자로 구원받은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이 지상에 이루어짐을 믿는데, 이 아마겟돈과 천년왕국설에 대해서는 교파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며 영적으로 이미 예수가 세상의 주권자(즉 그리스도의 교회가 천년왕국)이며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앞으로 도래할 천년왕국은 없다고 보는 무천년왕국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교부 시대 기독교도들 및 가톨릭과 주요 개신교 신학자 등 대다수 주류 교파들의 의견이다. 그 후 최후의 심판에 의해 지금의 세계가 끝나고 이 땅과 하늘이 이상향인 하느님의 나라(천국)로 새롭게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심판과 종말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를 좀더 설명하자면, 사람이 일반적으로 죽고 나서 천국/지옥(또는 연옥) 등에 가게 되는,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심판은 신학적으로 사심판이라고 한다. 사심판에서는 지상에서 살면서 자신이 한 일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교리 실천 여부 등에 따라 천국과 지옥(또는 연옥)으로 가 마지막 때까지 머무르게 된다. 반면 마지막 때에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벌어지는 최후의 심판은 공심판이라고 하는데, 이 때가 오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이 모두 부활하는 일이 일어난다. 천국/지옥(또는 연옥)에 가 있던 죽은 자들이 지상에서 부활한 육신을 얻게 되어 최종적이고 영원한 심판을 다시 받게 된다.[47]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지상과 천국에 함께 도래한 주의 나라를 누리며 영생(=어떠한 폭력이나 고통도, 죄악도 없고 주와 함께하는 극도로 행복한 낙원의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 기독교의 사후에 대한 교리는 천국/기독교와 지옥(기독교)도 같이 참고하자.
앞에 설명했듯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인 역사관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예언하는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는 것이 정통 교리[48]이긴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히 재림할 것이라는 점과, 재림 이후 완전한 하느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완전히 펼쳐지기 전까지는 세상의 환란과, 기독교도들에게도 고통이 가득찬 시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복음서와 요한묵시록의 서술을 따라 대부분 교파의 교리 견해가 일치한다. 다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이 흔히 대중문화에서 묘사하는 것 처럼, 인류가 멸망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해가 많은데, 말세 문서를 참고하자.
3.5. 민족관[편집]
기독교의 전신인 유대교 시절에는 히브리 민족(유대인)을 중심으로 하는 선민사상과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구약시대의 예언들을 거치며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 예고되었고, 이어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신약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성을 초월한 세계종교가 된 기독교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없는 존재라고 가르치며, 힌두교나 유대교의 배타적인 민족주의, 더 나아가 인종 차별을 거부하는 면모가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백인이거나, 아시아인이거나 흑인이거나 여타 소수민족들이거나 인종과 국가의 구분 없이 모두 기독교 신앙에 따라 신앙생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26–29(공동번역)
위 구절을 보면, 유대인 중심 구원관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 비유대인 이방인들에게로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그리고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믿으며,[49]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례를 받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구약 시대의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며 구원받을 자격을 얻는다.
3.6. 인간관[편집]
imago Dei 문서를 함께 참고하는게 좋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한번 죽으나, 예수의 재림 이후 다시 육체의 부활을 겪고 이후에는 영원히 산다고 믿는다. 모든 인간은 비록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질 숙명에 처해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으로 부활 이후 다시는 죽지 않고 하느님과 더불어 살 수 있다고 여겨진다.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래 전부터 믿어온 기독교의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현재는 성경의 말씀을 글자그대로 사실이라고 보는 교파인가 융통성있게 해석하는 교파인가에 따라 창조와 기독교적 인간 정체성에 대한 의견차이가 다소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관의 핵심 이념과 정신은 교파들이 모두 공유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미지)을 따라 만들어 졌다. 따라서 인간은 존엄하며, 모든 생물 중 가장 존귀하다.(창세기 1장 26절, 28절, 9장 1~2절, 17장 20절))[50]
최초의 인간(아담)은 어른 남자이며 하느님에 의해 진흙으로 만들어졌고, 두번째 인간(하와)은 어른 여자로 남자의 갈비뼈를 이용해서 만들어졌다.(창세기 1장, 2장)[51]
인간은 하느님에게 순명해야 하며, 인간이 하느님을 넘어서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창세기 11장).[52]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이 될 순 없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그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다. 즉 인간은 하느님과 결합할 수 있다.[53] 이를 천국이라고 한다. 참조]
인간이 늙고 죽는 것은 최초의 인간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겨 원죄를 가졌기 때문이다.(창세기 3장) 참고로 이 원죄에 대해서 여러 논쟁이나 오해가 많은데, 기독교에서 이해하는 원죄는 그 자체로 단죄받을 죄라기보다는 본래 선한 인간의 본성을 덮고, 죄로 자꾸 기울게 하는 대물림되는 악한 영혼의 성향에 가깝다. 따라서 가톨릭 등 보편교회 신학에서는 인간은 원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고 본다.[54]
또 기독교 인간관의 특징은 부활신앙의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례를 따라 마지막 때(말세, 즉 예수 재림의 때)에 영혼과 육신이 온전히 합쳐져 부활하게 될 존재라고 가르친다. 뒤이어 현세에서의 행적과 믿음에 따라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보는데, 이 과정에 대해서는 최후의 심판을 참고.
3.7. 징벌관과 구원관[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원죄(기독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구원 문서의 2.2.1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대부분의 정통 교파 기독교는 원죄의 대물림을 인정한다. 기독교에서는 성서 속 최초의 인간들이 창조주의 명령을 어겨서 발생한 보편적인 죄를 원죄라 부르는데, 이 원죄는 모든 존재에게 현존한다. 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모든 기독교 종파의 공통교리)[55] 원죄 및 자기 탓으로 지은 죄를 '참으로 용서받거나'(보편교회 신학), 죄인인 건 변함없으나 이에 대한 벌을 면제받은 의인이라고 인정(개신교 신학)받는다고 믿는다.(이신칭의 참고)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가톨릭과 견해가 일치하는 개신교 교파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적인 차이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원죄 이외의 죄(즉 자기 탓으로 지은 죄악들)의 대물림은 정통 교파들에서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
즉,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모든 인간은 야훼가 처음 창조한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므로 그들의 원죄[56]를 물려받게 되며, 이 원죄로 인한 본죄[57]까지 사람들이 저지르게 되면서 세상이 타락하였으며, 악인은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인간은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를 믿고 선하게 된 사람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또는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가톨릭과 정교회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연옥에 대한 교리가 있다. 연옥 문서 참고. 사람의 인격의 기본이 되는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이는 육체의 죽음과는 상관 없이 불멸한다고 믿는다. 또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영혼 불멸과 천국, 지옥을 믿지 않는 교파도 종종 존재한다.다만, 정교회에서는 원죄라 부르지는 않고, '조상의 죄'라고 부른다.
기독교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하며, 모든 정통 기독교 교파들에서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서 드러난 죄의 용서를 믿으며 원죄와 본죄를 용서하는 세례(침례)를 받고(보편교회는 특히 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함) 참된 신앙으로 예수의 가르침과 성경,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데 노력하고(자선과 이웃사랑 등) 미사/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기도, 성체성사/성만찬[58]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인생에서 저지르는 여러 죄악들을 지속적으로 참회[59]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60][62] 죽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일단 영혼의 상태로 천국에 가서 편안하고 즐거운 복락을 누리고, 장차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시 영혼과 육신이 온전하게 합쳐져서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통해 지상에도 하느님 나라(천국)가 도래할 때 부활의 새로운 몸[63]을 입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행복하고 이상적인 삶을 끝없이 누릴 것을 믿는다.
기독교의 천국관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독교의 천국은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또한 마지막 때가 와서 하느님 나라가 지상에 도래한다는 교리를 성경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새 하늘과 새로운 땅에 내려온다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천국/기독교를 참고.
3.8. 생활관[편집]
교리적으로 유대교 시절의 구약성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십계명 등), 교파들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우상숭배나 미신 등에 배타적이며 유일신론에 입각해 다신교적 가치관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성윤리 또한 교파들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라서, 가족주의를 중시하고 동성애에 대한 터부나 혼전순결, 성적 타락에 대한 반대 등이 교리에 들어가 있다. 또 이슬람과는 달리 많은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삼는다. 특히 가톨릭과 정교회의 경우는 혼인과 자녀의 양육을 초월자가 신자에게 부여한 일종의 '임무'로 해석하여, 원칙적으로 이혼도 금지하고, 일부다처제를 유지할 경우 7성사 참여를 금지할 정도로 강경한 일부일처제를 지향한다. 축첩제나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신자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성사도 볼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간음중인 상태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장로회 등 개신교 주요종파에서도 일부다처제를 반대하는 기조는 매우 강하며, 구한말 한국에 선교 온 선교사들도 축첩 상태를 유지하는 신자가 새로 입교할 경우 축첩을 포기하고 정실부인과의 결혼관계만을 유지하지 않는 이상 입교 및 세례주기를 거부하는 사례도 매우 많았다.
물론 이것도 지역에 따라 좀 달라서,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기독교는 일부다처제를 용인해 주는 경우도 있다.[64] 그러나 오해하면 안될 것이, 일부다처제를 예외적으로 용인해주는 일부 교파 및 국가도 있긴 있으나,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올바른 기독교적 관습으로 보고 일부다처제를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절대 다수다. 사실 성공회의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위에 언급된 케냐에서도 가톨릭,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기독교계가 모두 나서 정부 주도의 일부다처제 법안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기도 하였으며(또한 기독교인이 혼인성사 등 교회에서 결혼을 원할 경우 무조건 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지키는게 원칙), 일부일처제를 강력히 중시해서 새로 개종해 들어오는 일부다처 및 축첩에 익숙한 현지인들과 의견차이를 보이는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가톨릭 선교 사례 등 아프리카의 기독교계도 일단 일부일처제를 우선적으로 원칙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구약 성경을 공유하며 율법을 아직 지키는 유대교와 비교하면, 기독교는 구약 율법의 강제성이 신약성경 시대에 와서 의미가 사라졌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십계명을 제외한 구약시대의 율법은 신학적 가치는 있지만 더이상 준수할 의미가 사라진,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성되어 끝난 문제라는 것. 신자들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준수로 이뤄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율법이 아닌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믿음과 행위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기독교 교파들이 공유하는 대단히 중요한 교리다.[65] 이 부분의 교리를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구약 율법 중에서도 신약의 정신과 부합되는 '도덕법'은 여전히 대단히 중요히 여기며(대표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나 주일-안식일 엄수, 십계명 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의해 성취되었고 완성되었다고 보는 동물 제사나 복식 규정, 식생활 등의 의식 율법은 강제성과 의미가 더이상 사라졌다고 본다. 때문에 일반적인 주류 교파 기독교인이 구약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돼지고기, 갑각류 등을 먹거나 동물 제사를 더이상 드리지 않아도, 할례를 하지 않았어도, 이슬람이나 바하이처럼 예배 전에 복잡한 세정의식을 하지 않아도, 성 삼위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기도하는 생활과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모든 죄악을 피하려는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산다면 구원받는데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이면서 복잡한 율법 수행을 매우 강조하는 이슬람이나 유대교와 비교해 대단히 중요한 점.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매우 강조하는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할 것과 각종 성사, 미사, 전례, 예배 등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보편교회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계시해준 '보편적인 구원의 길'이다. 즉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교회의 공적인 지도 없이는 자기주관이나 자기합리화를 통한 죄 등에 빠져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교리와 성사들을 통해 가장 천국에 가기쉬운 보편적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 따라서 보편교회(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어떤 신자가 고의적으로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도 개인적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무교회주의'를 배척하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주일미사 참례나 7성사 등의 교회 예식에도 함께해야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교회법에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의 믿음을 더 중시하고 교회적 형식과 예식의 일원이 되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활에 있어서는(ex: 생활에 있어 자잘한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유대교나 이슬람보다 어느정도 자유로운 성향이 있다. 식생활에 있어서도 기독교에는 구약 관습을 여전히 중요시하는 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 일부 독립 교회들이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 일부 종파 외에는 코셔 푸드나 할랄 푸드 같이 '신자들은 이것만 먹어야 한다' 식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특징[66]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술, 담배, 뜨거운 음료와 카페인을 금지하는 지혜의 말씀이라는 율법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 아닌 데다 주류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전반적으로 성차별이 존재한다. 그나마 점차 시대가 바뀌어 여성을 남성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던 구약의 시대착오적인 율법은 대부분 무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디모데전서 2장을 위시한 여러 성경 구절을 이유로 기독교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 하와는 아담의 배필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고, 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여성은 (아이들을 제외한) 남성을 감히 가르치면 안 되며 주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여성을 성직자로 서품하지 않는다(수도자는 가능하나 수도사제는 될 수 없다). 그러나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 여성 성직자를 제한하는 건 단순히 상술한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하는 건 아니고 좀 더 복잡한 신학적 이유가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여성 교회 지도자가 등장하는 데다가 디모데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로부터가 특정 여성을 사도라면서 띄워주기까지 한다. 교리적으로도 남성과 여성은 서로 동등하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여성도 교리교사가 될 수 있고 신학대학에서 교수로서 남성 사제들을 가르칠 수도 있으며 교황청에서는 고위 공직에 여성을 임명하기도 한다. 이들 종파가 여성 성직자를 허용하지 않는 게 성차별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성경을 근거로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가르치거나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제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개신교는 일부 보수적인 교단[67]을 제외하고, 여성 목사안수를 허용하는 편이다.
4. 분류[편집]
크게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뉘며 서방교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68], 동방교회에는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69],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로 나뉜다. 이중 동서방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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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its most basic, Christianity is the faith tradition that focuses on the figure of Jesus Christ. In this context, faith refers both to the believers' act of trust and to the content of their faith. As a tradition, Christianity is more than a system of religious belief.
Christianity | Definition, Origin, History, Beliefs, Symbols ...
https://en.wikipedia.org/wiki/Christi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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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γὰρ Οὕτως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ὰ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한복음 3장 16절,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기독교(基督敎),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2] 또는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신자 수는 모든 교파[3]를 합쳐 약 24억 명에 달하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이며 2위는 이슬람교(19억)일 정도이다. 기독교는 특히 서양을 중심으로 인류의 사회 및 문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종교[4]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와 함께 세계 4대 종교로 꼽힌다.
전 세계가 통용하는 역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하는 서력기원 이며,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구권 국가 구성원의 과반수가 기독교 신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슬람 신자 수가 증가하고, 무종교인들과 무신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알고 있지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선진국에서는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개발도상국에서 신자 수가 증가하고 있어서 전체 비율은 거의 일정하다.
기독교의 경전은 성경으로, 신약과 구약으로 구성된다.
기독교는 유대교에서 따르는 절대자의 계시의 전통과 역사성을 표방하였다. 때문에 학술적으로 유대교와 나중에 발생한 이슬람까지 포함한 세 종교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신학과 상당수 기독교 종파의 전통주의•근본주의 신학에서는 학술적 견해와는 달리 이슬람에 대해 '아브라함 계통의 계시종교에 속하지 않는다'고 간주한다.
일단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슬람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로 인정했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이 자체만으로 가톨릭측에서이 이슬람에도 구원이 있다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가톨릭 입장에선 이슬람교 역시 자신들이 파생된 낡은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에 대한 올바른 교리가 없는, 즉 구원이 불확실한 '불완전한 아브라함계 종교'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유대교와의 차이는 크게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야훼와 동급인 신으로 보고 신약성경을 정경(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책)으로 인정하지만, 유대교는 소수의 메시아주의 분파를 제외하면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랍비 중 하나로 본다. 때문에 유대교 경전인 타나크가 기독교 기준에서의 구약성경으로 불리는 것 역시 인정하지 않으며, 히브리 성경의 권위를 매우 높게 보고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신약성경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을 가질지언정 본성에서는 동일한 유일신으로 본다. 주의할 점은 성부=성자=성령이 아니며 성부=하느님, 성자=하느님, 성령=하느님이고 하느님은 한 분이라고 보아야 한분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삼위일체론이라 한다. 삼위일체론에 따라 하느님과 동일 본질을 가진 한 예수를 신으로 믿는 경우가 많지만, 모든 기독교 종파가 삼위일체론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를 신이 아닌 수많은 예언자 중 하나로만 보며 예수보단 그 수많은 예언자 중 최후의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더 중시한다. 알라(한국어 번역시 하느님)라는 존재를 유일신으로 믿는다는 점에서는 일신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기독교가 유대교, 이슬람교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과 어떻게 인정하느냐 하는 관점이다. 물론 세세하게는 그 말고도 차이점들이 아주 많다.
흔히 기독교를 "서양"의 종교로 보고 "동양"의 유교/불교 등과 이분법적으로 해석하지만, 기독교의 발상지는 서아시아이며 서아시아는 엄연한 동양이다. 동양에서 발원한 기독교가 고대 유럽 세계를 통해 전파된 것. 즉 이분법적으로 기독교를 서양 종교라고만 볼 수는 없다.
2. 명칭[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기독교 문서의 8.2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기독교(그리스도교)는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 네스토리우스파 등 예수를 메시아(그리스도)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 모두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스도 어원
기독교의 '기독'은 그리스도의 한자 음역 표현인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유래하였다 나아가 개화기 문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야소기독(耶蘇基督)'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혹은 일제강점기 이전 ~ 초반부를 다룬 시기의 소설들에도 "'야소'를 믿는답시고"라는 식의 표기가 종종 보인다. 그러므로 기독교(기리사독교)와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는 명백한 동의어다.
한편,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곧 개신교라는 잘못된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한국에서 이런 혼동이 유독 심하긴 하나 중국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있고, 서양에서도 헷갈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 문화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어느 정도 세속화되긴 했어도 개신교가 문화적 기반 노릇을 했던 영국, 네덜란드, 북유럽 등에서도 자신들의 종교를 지칭하는 표현을 헷갈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와 기독교를 동일하게 여기며, 천주교(가톨릭) 및 정교회는 (기독교가 아닌) 별도의 종교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봐도 기독교라는 공통분모 아래에서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등의 종파가 나뉜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 및 정교회는 기독교가 아니라는 인식은 그릇된 상식임에 틀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라는 어휘가 갖는 사회적 선입관 때문인지, 여전히 가톨릭 등에서는 직접적으로 '기독교'라는 어휘를 즐겨 사용하지는 않고 '그리스도교' 등으로 변형하여 부르는 편이고, 개신교 단체에서 '기독교'를 선호하는 편이다.
기독교
종파 명칭
한국에서의 대중적인 호칭[5]
대중적인 관련 상징물
교파
개신교
(프로테스탄티즘)
기독교[6]
성경, 교회[7], 예배, 목사, 장로, 권사 등
성공회 [8],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루터교회 등
천주교
(가톨릭 교회)
천주교, 가톨릭, 카톨릭
성경, 성당, 미사, 묵주, 수녀, 신부, 추기경, 교황 등
단일 교파
정교회
(동방 정교회)
정교회, 그리스 정교[9]
성경, 성당, 성찬예배 등
단일 교파
이에 일상 속에서 개신교 신도를 으레 기독교 신도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어의 올바른 뜻을 고려할 때 '기독교 신도'는 모호한 분류다. 기독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고, 모두 일상적으로 '기독교'라고 뭉뚱그려 지칭하기엔 각자만의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10] 하지만 일반적인 오해에 따라 기독교를 개신교와 동일시한다면 기독교 신도란 '개신교 신도'에 한정된 표현이기 때문에 그리 모호하지 않긴 하다.[11]
오늘날에는 기독교가 곧 개신교라 오해하는 경향을 염두에 두고, 기독교를 지칭할 때는 오히려 그리스도교/크리스트교로 풀어서 말하곤 한다. 특히 종교적 중립을 중시해야 하는 교과서에서는 크리스트교라는 명칭이 주로 쓰인다. 나아가 신자들 중에서도 '메시아(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를 믿는 종교'라는 의미가 더 확실히 와닿기도 하고, '기독교'를 제외하면 단어에 '그리스도' 대신 '기독'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12]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
3. 교리[편집]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합의안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기독교 교리부분을 수정하기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편집권 남용으로 간주되어 제재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신자의 구원을 위함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기독교에서 구원이란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써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서 벗어나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모든 사람은 죄로 향하는 본성을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를 벗어나지 못하여 현세의 삶에서는 죄많은 삶으로 인해 고통받고, 사후에는 지옥에 떨어질 운명이다.[13][14][15] 인간의 부족한 능력만으로 그 죗값을 다 치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운명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고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도움과 죄의 용서를 받아야만 한다.
기독교 교리에서 죄의 용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죄의 대가는 사후의 영원한 지옥벌이다.[16][17] 그러나 하느님은 인류를 사랑하시어, 인류가 지옥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보내 수난과 죽음을 당함으로써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였다.[18] 따라서 죄값은 이미 전부 치러졌으나, 모든 인류가 자동으로 구원받게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내용을 알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여, 여전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음으로써, 인간의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신자가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가 가르친 계명을 실천함으로 따르는 삶의 자세, 죄의 포기, 선한 마음가짐 등의 선행이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1.예수를 믿고 2.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사람은 죄를 용서받으며 구원받아 사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19] 예수의 제자들은 이러한 기쁜 사실인 복음을 예수의 행적과 삶, 그리고 이를 계승한 교회,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도록 하였다.
믿고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을 고백하고, 이 믿음을 통해서 죄악의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회개의 삶을 실천해야만 한다. 하느님이 예수님을 보내 자신을 구원하셨음을 믿고,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한 계명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면 그 하느님의 은총(=예수님의 도움, 성령의 작용)에 힘입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새 삶을 살아갈 은총의 원동력을 얻게 되며, 이를 통해 현세에서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늘의 기쁨을 누리고, 사후에는 지옥행을 면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20] 이것이 주류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다.
또한, 단순히 믿음 이후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이 기독교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시작,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 역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이다.[21] 또한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바라시며, 모든 사람들이 은총을 통해 믿음을 갖고 구원받기를 바라지만 인간은 원죄(악한 경향)에 물든 자유의지에 때문에 하느님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으로 모든 인류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며, 동시에 이 세상은 여전히 원죄에 의해 초래된 죄와 악이 상당히 퍼져 있다는 것, 또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죄의 악한 성향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죄와 악, 하느님에 대한 불신을 피해 믿음을 지켜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한편, 기독교는 2000년이나 되는 긴 역사 동안 무수한 분파들이 갈라져 나옴에 따라 현재는 2만 개(...)나 되는 흠좀무한 수의 교파들[22]이 있으며 이에 따라 각 교파의 교리나 성경 해석도 조금씩 상이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교파에서 동일하게 믿고 있는 신학적 믿음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의 천지창조
구세주(메시아,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동정녀에게서의 출생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면 천국의 거주민이 될 자격을 얻으며, 영생(영원한 삶)을 얻을 자격이 주어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과 셋째 날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재림(세상 마지막 때에 다시 올 것)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 승천 및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교회의 존재 및 교회론적 교리[23]
성령의 존재와 성령을 통한 영적인 각종 은총의 존재
성부, 성자, 성령이 본질로서는 한분이시며 위격으로는 세분이시라는 삼위일체 교리
인간 영혼의 존재와 천국/지옥으로 대표되는 사후세계의 존재
마지막 때의 모든 인간의 부활과 예수 재림 후 최후의 심판에 따른 영원한 판결, 그리고 하느님 나라(천국)의 완성
이 주요 교리는 이를 총 12개의 신조로 요약한 사도신경, 그리고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이 교리들을 믿을 교리(신덕 도리)라고 해서, 구원을 위하여 필수적으로 믿고 고백하여야 하는 요소로 본다. 대다수 개신교 교파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이나, 사도전승 문제[24]나 예배 관습 등 세부적인 교리에서는 교파간의 많은 차이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기독교 내에서 종교전쟁을 벌였을 정도로 기독교의 교파 간의 교리 차이에 대한 견해는 첨예하게 대립된 적도 있다. 그리고 다른 교파간 관계는 교회일치운동에도 불구하고 원활하지 않은 편이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교도권 중심의 성경 해석이 성경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이며 마태복음 28장 19~20절, 베드로 1서 1장 20~21절 등의 성경구절을 근거로, 성직자만이 아닌 일반 평신도 역시 성경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개신교가 수많은 교파들로 갈라져 있는 원인이며 수없이 많은 갖가지 이단들이 발생한 주요 원인이다.
3.1. 사랑관[편집]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마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레위기 19:18(공동번역성서)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한 계명이 있고 또 그 밖에도 다른 계명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이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로마서 13:8~10(공동번역성서)
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25]
요한의 복음서 13:34~35(공동번역성서)
1.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2.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욕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6.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7.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냅니다.
8. 사랑은 가실 줄을 모릅니다. 말씀을 받아 전하는 특권도 사라지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도 끊어지고, 지식도 사라질 것입니다.
9. 우리가 아는 것도 불완전하고 말씀을 받아 전하는 것도 불완전하지만
10. 완전한 것이 오면 불완전한 것은 사라집니다.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어린이의 말을 하고, 어린이의 생각을 하고, 어린이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때의 것들을 버렸습니다.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 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 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3:1~13(공동번역성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요한1서 4:18(공동번역성서)
그러므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13(공동번역성서)
모두들 조반을 끝내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예, 주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예수께서 세 번째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는 바람에 마음이 슬퍼졌다. 그러나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제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하고 분부하셨다.
그들 중 한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마태복음 22:35-40(공동번역성서)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 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 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 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르코의 복음서 12:28-31(공동번역성서)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10장 25~37절(공동번역성서)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내가 반기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이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다오.
호세아 6장 6절(공동번역성서)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26]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7]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태오의 복음서 19:16-24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오의 복음서 25장 31절 - 46절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요한복음 3:16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8절(공동번역성서)
이어서, 하느님이 성경과 교리를 통해 명령하신 계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서로 사랑하라"이다. 이는 물론 절대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 온정적인 박애정신인 아가페적 사랑이다. 예수는 성경에서 여러 번에 걸쳐 사랑을 실천할 것을 직접 강조하였다. 단순히 가족과 친구를 아끼라고 한 것이 아니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라고 하였다. 누가 이웃인가 하는 질문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자기와 한 몸인 것처럼, 예수 본인을 직접 만난 것처럼 대하라고 가르쳤다. 즉, 온 인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예수는 이러한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는 사람만을 훗날 천국에서 자신의 제자로 대할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였다.[28] 이 때문에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의 종교'로 알려져있다. 만약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실제로는 믿고 따르지 않으면서 예수를 따른다고 자처하는 사람 또는 교파가 혹시 있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사이비이다. 사랑의 실천이 따라오지 않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단, 여기서 정말 조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기독교적 사랑이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어떤 행동을 하던지간에 무작정, 무제한적인 관용을 베푸는 식의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죄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 다니면서도 양심이 무뎌져버려 그것이 죄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고 하자. 이 경우에 '사랑'이나 기독교 외적인 세속적 가치관을 내세워 이들의 죄의 상태를 침묵하거나 죄인들의 죄짓는 행위를 묵인/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신자라면, 그것이 죄라는 것을 보편적 교리에 입각하여 지적하고, 또한 죄인들을 죄에서 벗어나게끔 기도하고, 실제적으로도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또, 선행과 사랑의 강조는 인간의 노력을 통한 사랑의 실천만으로 온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류는 여전히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스스로 온전히 의롭고 선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도움 없이 인간의 노력(선행이라거나, 이웃사랑이라거나)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죄있는 인간은 하느님앞에 한없이 겸손해야 하며, 스스로 약하고 모자람을 인정하고, 믿음과 교리를 반드시 받아들여 하느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상술했듯이 믿음과 교리를 따르는 삶, 그리고 사랑의 가르침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 은총이자 도움이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라면서, 믿음과 구원을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은 역시 예수와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서로 사랑하라는 아가페적) 계명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천 교리상으로는 십계명을 두고 이를 공통적으로 지킨다.[29]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같은 비신자들에게도 유명한 원칙 역시 이웃사랑의 계명이 확장된 것이다. 또한 이를 따라 온 인류에 대한 공동체 의식, 즉, 공동선, 사회정의에 대한 열정과 인류애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성경 해석과 교리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이단논쟁을 수반해왔고 지금도 수반하고 있다. 때문에 전통적인 교파들, 특히 보편교회에선 기독교내에서 성직자가 아닌 일반신자의 자의적인 성경해석이나 교리해석은 금지되고 있는 편이다. 다만 개신교는 다수의 분파가 난립하며 여러 성경 해석이 있는 편이다.
3.2. 주요 예식(성사)[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7성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독교에서는 오랜 역사 전통과 성경 기록에 의거해 여러 예식들을 확립시켰으며 이것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주요한 예식들은 다음과 같다.
성사[30]
세례: 예수를 하느님이자 자신의 죄악에서 구원할 인격적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자로 재탄생하는 예식이다. [31][32]
성만찬: 예수의 피와 살을 의미하는 포도주와 빵(떡)을 나누어 먹음으로서 구원을 확신하고 공동체적 동일감을 고양하는 예식이다. 예수가 자신의 피와 살을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을 때, 예수를 따르던 많은 유태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떠났듯이[33], 성찬예식은 일반적인 비기독교도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예식이다.
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에서는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성찬 제병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으로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성변화설을 주장한다. 자세한 것은 성체성사와 성만찬 문서를 참고할 것. 또한 타교파에서 받은 세례 등을 인정한다. 세례성사 참고.
가톨릭, 정교회와 오리엔트 정교회에서 인정하는 예식 [34]
견진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신품성사) - 보편교회의 성직자를 양성하는 성사. 신자가 보편교회의 사제 및 수도자, 기혼자[35]가 되기 위한 거룩한 소명을 받아 가지는 것을 '성소'(聖召 = 거룩한 소명)라고 부른다. 다만, 수도자는 성품성사를 받는 것이 아닌 자체적인 과정을 통해 입회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품성사를 받지 않은(=성직자가 아닌) 수도자도 있다. 수도자 생활을 하면서 추가로 신학과정을 공부한 뒤 성품성사도 받아서 성직자가 된 수도자는 수도 사제(수사 신부)[36]라고 불린다.
병자성사 - 죽어가는 사람, 중병에 걸린 사람에게 교회의 이름으로 베푸는 성사. 축성된 성유를 바르고[37][38]환자의 쾌유와 은총을 빈다. 원칙적으로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나서 진행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마지막 고해를 한다면 이를 통해 죽기 전에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굳이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이 일생에 한번 하는 성사가 아니라, 큰 수술 등을 앞두거나 병이 재발하거나 할 경우에 여러번 받는 경우도 있다.
공교회 전통이 남아있는 개신교 교파인 성공회는 위의 보편교회 전용 예식을, 성사는 아니지만 성사에 준하는 예식이라 하여 '준성사', 또는 '성사적 예식'이라 부른다. 이 다섯 준성사를 고대 초기 교회로부터 내려온 전통으로 존중하고 시행하기는 하나,[39][40] 공식 예식에서는 세례와 성찬례만을 중시한다. 예를 들어 성공회 신자가 큰 죄를 지었을 때 고해성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도 괜찮고, 그냥 고해성사를 하지 않고 개신교식 개인 회개만을 통해서도 고해성사 필요없이[41] 똑같이 용서받는다고 본다. 어차피 주님 앞에 용서를 비는 것에, 긍휼을 구하는 진심만 있다면 형식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
3.3. 기도문[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기독교/기도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모든 기독교 교파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도문으로 주님의 기도(주의 기도/주기도문)가 있다. 각 교파별로 사용하는 다양한 기도문에 대해서는 상세 내용 참조.
3.4. 종교관[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신학/기독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다. 즉, 자신들이 섬길 신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타 종교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을 띠고 있다.[42]
기본적으로 기독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믿고 구원의 주체로 믿는 데서부터 시작된 종교이며, 이후 시간이 흘러 서기 4세기 이후 여러번의 종교적인 논의 끝에 예수가 유대교의 야훼와 동일한 존재로 설파되었다. 즉, 삼위일체론을 정설로 채택한 주류 교단들은 예수와 성부, 그리고 성령의 세가지 페르소나가 야훼라는 하나의 본질 및 본성을 지닌 유일한 하느님으로 믿는다. 다만 예수의 경우 특이하게도 인간의 본질 및 본성도 지닌다. 자세한 것은 삼위일체론 참고.
일반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며 예수를 통한 구원을 인정한다면 기독교로 분류되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야훼만을 신으로 섬기면 유대교 계통으로 분류한다. 반면 이슬람의 경우에는 예수를 유대 민족의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도, 예수의 신격이나 예수를 통한 구원을 인정하지 않고 무함마드 이전의 일반적인 예언자 중 하나로 본다는 특징이 있다.
삼위일체 교리상으로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 한 신이지만, 예수와 구약에서 묘사된 신의 성격이나 강조점은 사실상 차이가 많이 난다. 학문적인 논의에 의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약의 신은 승리와 정의의 신으로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적을 파괴하고 불복종한 자들을 처벌하는 신이며 이적의 규모도 거의 범 지구적, 재해적인 규모다. 탈출기에서 '이스라엘은 나의 장자와 같다'라고 칭한 바와 같이 유대인의 민족신의 성격을 띠고 있다.[43]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와 희생의 신으로서 적을 용서하고 인류를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하는 신이다. 이적의 규모도 국지적이며 평화적이다. 특히 예수 신앙은 서유럽(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의 범주에서 벗어나 범세계적인 신의 성격을 보인다. 이처럼 예수와 야훼의 성격상 차이점이 극명한 관계로 역사적으로 마르키온 등 몇몇 신학자들은 예수의 "아버지"가 야훼가 아니라는 주장도 했다가 초기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된 적도 있다.[44]
그러나 절대 다수의 주류 기독교에서는 예수와 구약에서 묘사되던 신의 성향상 차이점은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정설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구약의 하느님이 전반적으로 예수보다 전투적이며 민족신에 가까운 모습 등으로 묘사된 것은 사실이라도, 후대로 갈 수록 구약의 하느님은 예수가 보여주던 모습과 비슷한 모습도 보여준다.[45] 이를테면 구약 중 시기적으로 비교적 후대의 책인 요나서에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후려패던 아시리아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예언자 요나에게 명령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탈출기에서 이집트가 참혹한 재앙을 맞는 것과 분명하게 대조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후대의 예언서들에서도 일벌백계의 하느님이라기보다는 끝까지 회개를 기다리고 죄인들이라도 회개하여 구원받는 것을 바라는 하느님으로서의 면모가 더 많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에제키엘서.
기독교의 세계관은 시작과 끝이 직선적인 세계관이다.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예수의 재림으로 세상이 종말을 맞는다고 믿는다.
즉, 예수와 성부, 성령이 천지를 창조한 주체이며, 전지전능하며 절대선의 위치에 서는 존재로 간주한다. 그리고 성령이 성부(또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왔으므로 예수와 성령은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하였으며 함께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46]
성경의 예언에 따라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다스리러 다시 올 것(재림)을 믿으며, 이때 새 하늘과 새땅이 펼쳐지기에 앞서 요한계시록에 따라 세상의 악한 자들과의 전쟁과 예수가 주권자로 구원받은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이 지상에 이루어짐을 믿는데, 이 아마겟돈과 천년왕국설에 대해서는 교파에 따라서 해석이 다르며 영적으로 이미 예수가 세상의 주권자(즉 그리스도의 교회가 천년왕국)이며 문자적이고 가시적인, 앞으로 도래할 천년왕국은 없다고 보는 무천년왕국설 역시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교부 시대 기독교도들 및 가톨릭과 주요 개신교 신학자 등 대다수 주류 교파들의 의견이다. 그 후 최후의 심판에 의해 지금의 세계가 끝나고 이 땅과 하늘이 이상향인 하느님의 나라(천국)로 새롭게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
심판과 종말에 관한 기독교의 교리를 좀더 설명하자면, 사람이 일반적으로 죽고 나서 천국/지옥(또는 연옥) 등에 가게 되는,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심판은 신학적으로 사심판이라고 한다. 사심판에서는 지상에서 살면서 자신이 한 일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교리 실천 여부 등에 따라 천국과 지옥(또는 연옥)으로 가 마지막 때까지 머무르게 된다. 반면 마지막 때에 재림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벌어지는 최후의 심판은 공심판이라고 하는데, 이 때가 오면, 지금까지 죽은 사람들이 모두 부활하는 일이 일어난다. 천국/지옥(또는 연옥)에 가 있던 죽은 자들이 지상에서 부활한 육신을 얻게 되어 최종적이고 영원한 심판을 다시 받게 된다.[47]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지상과 천국에 함께 도래한 주의 나라를 누리며 영생(=어떠한 폭력이나 고통도, 죄악도 없고 주와 함께하는 극도로 행복한 낙원의 영원한 삶)을 얻게 되는 것. 기독교의 사후에 대한 교리는 천국/기독교와 지옥(기독교)도 같이 참고하자.
앞에 설명했듯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종말론적인 역사관과 교리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예언하는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는 모른다는 것이 정통 교리[48]이긴 하지만,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히 재림할 것이라는 점과, 재림 이후 완전한 하느님 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완전히 펼쳐지기 전까지는 세상의 환란과, 기독교도들에게도 고통이 가득찬 시기가 펼쳐질 것이라고 보는 점에서는 복음서와 요한묵시록의 서술을 따라 대부분 교파의 교리 견해가 일치한다. 다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이 흔히 대중문화에서 묘사하는 것 처럼, 인류가 멸망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해가 많은데, 말세 문서를 참고하자.
3.5. 민족관[편집]
기독교의 전신인 유대교 시절에는 히브리 민족(유대인)을 중심으로 하는 선민사상과 민족주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구약시대의 예언들을 거치며 이방인과 유대인의 장벽이 허물어질 것이 예고되었고, 이어 예수 그리스도 이후의 신약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성을 초월한 세계종교가 된 기독교는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없는 존재라고 가르치며, 힌두교나 유대교의 배타적인 민족주의, 더 나아가 인종 차별을 거부하는 면모가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백인이거나, 아시아인이거나 흑인이거나 여타 소수민족들이거나 인종과 국가의 구분 없이 모두 기독교 신앙에 따라 신앙생활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따라서 약속에 의한 상속자들입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3:26–29(공동번역)
위 구절을 보면, 유대인 중심 구원관이 예수 그리스도 이후 비유대인 이방인들에게로까지 확장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그리고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받아들이고 믿으며,[49]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례를 받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사람은 구약 시대의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며 구원받을 자격을 얻는다.
3.6. 인간관[편집]
imago Dei 문서를 함께 참고하는게 좋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한번 죽으나, 예수의 재림 이후 다시 육체의 부활을 겪고 이후에는 영원히 산다고 믿는다. 모든 인간은 비록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질 숙명에 처해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으로 부활 이후 다시는 죽지 않고 하느님과 더불어 살 수 있다고 여겨진다.
성경의 기록을 바탕으로, 오래 전부터 믿어온 기독교의 인간관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현재는 성경의 말씀을 글자그대로 사실이라고 보는 교파인가 융통성있게 해석하는 교파인가에 따라 창조와 기독교적 인간 정체성에 대한 의견차이가 다소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관의 핵심 이념과 정신은 교파들이 모두 공유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미지)을 따라 만들어 졌다. 따라서 인간은 존엄하며, 모든 생물 중 가장 존귀하다.(창세기 1장 26절, 28절, 9장 1~2절, 17장 20절))[50]
최초의 인간(아담)은 어른 남자이며 하느님에 의해 진흙으로 만들어졌고, 두번째 인간(하와)은 어른 여자로 남자의 갈비뼈를 이용해서 만들어졌다.(창세기 1장, 2장)[51]
인간은 하느님에게 순명해야 하며, 인간이 하느님을 넘어서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창세기 11장).[52]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하느님이 될 순 없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그 영원성에 참여할 수 있다. 즉 인간은 하느님과 결합할 수 있다.[53] 이를 천국이라고 한다. 참조]
인간이 늙고 죽는 것은 최초의 인간들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겨 원죄를 가졌기 때문이다.(창세기 3장) 참고로 이 원죄에 대해서 여러 논쟁이나 오해가 많은데, 기독교에서 이해하는 원죄는 그 자체로 단죄받을 죄라기보다는 본래 선한 인간의 본성을 덮고, 죄로 자꾸 기울게 하는 대물림되는 악한 영혼의 성향에 가깝다. 따라서 가톨릭 등 보편교회 신학에서는 인간은 원죄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고 본다.[54]
또 기독교 인간관의 특징은 부활신앙의 면모를 보인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모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례를 따라 마지막 때(말세, 즉 예수 재림의 때)에 영혼과 육신이 온전히 합쳐져 부활하게 될 존재라고 가르친다. 뒤이어 현세에서의 행적과 믿음에 따라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보는데, 이 과정에 대해서는 최후의 심판을 참고.
3.7. 징벌관과 구원관[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원죄(기독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구원 문서의 2.2.1번 문단을 참고하십시오.
대부분의 정통 교파 기독교는 원죄의 대물림을 인정한다. 기독교에서는 성서 속 최초의 인간들이 창조주의 명령을 어겨서 발생한 보편적인 죄를 원죄라 부르는데, 이 원죄는 모든 존재에게 현존한다. 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자신의 구원자로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모든 기독교 종파의 공통교리)[55] 원죄 및 자기 탓으로 지은 죄를 '참으로 용서받거나'(보편교회 신학), 죄인인 건 변함없으나 이에 대한 벌을 면제받은 의인이라고 인정(개신교 신학)받는다고 믿는다.(이신칭의 참고)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선 가톨릭과 견해가 일치하는 개신교 교파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적인 차이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원죄 이외의 죄(즉 자기 탓으로 지은 죄악들)의 대물림은 정통 교파들에서는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
즉,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모든 인간은 야훼가 처음 창조한 인간인 아담과 하와의 자손이므로 그들의 원죄[56]를 물려받게 되며, 이 원죄로 인한 본죄[57]까지 사람들이 저지르게 되면서 세상이 타락하였으며, 악인은 지옥에 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인간은 삼위일체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를 믿고 선하게 된 사람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또는 부활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가톨릭과 정교회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연옥에 대한 교리가 있다. 연옥 문서 참고. 사람의 인격의 기본이 되는 영혼이 있다고 믿으며, 이는 육체의 죽음과는 상관 없이 불멸한다고 믿는다. 또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영혼 불멸과 천국, 지옥을 믿지 않는 교파도 종종 존재한다.다만, 정교회에서는 원죄라 부르지는 않고, '조상의 죄'라고 부른다.
기독교에서, 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하며, 모든 정통 기독교 교파들에서 이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서 드러난 죄의 용서를 믿으며 원죄와 본죄를 용서하는 세례(침례)를 받고(보편교회는 특히 세례의 중요성을 강조함) 참된 신앙으로 예수의 가르침과 성경, 주님의 계명들을 지키는데 노력하고(자선과 이웃사랑 등) 미사/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기도, 성체성사/성만찬[58] 등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며 인생에서 저지르는 여러 죄악들을 지속적으로 참회[59]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60][62] 죽어서 구원받은 사람은 일단 영혼의 상태로 천국에 가서 편안하고 즐거운 복락을 누리고, 장차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시 영혼과 육신이 온전하게 합쳐져서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을 통해 지상에도 하느님 나라(천국)가 도래할 때 부활의 새로운 몸[63]을 입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행복하고 이상적인 삶을 끝없이 누릴 것을 믿는다.
기독교의 천국관에 대해 설명하자면, 기독교의 천국은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과 동일시된다. 또한 마지막 때가 와서 하느님 나라가 지상에 도래한다는 교리를 성경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새 하늘과 새로운 땅에 내려온다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천국/기독교를 참고.
3.8. 생활관[편집]
교리적으로 유대교 시절의 구약성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십계명 등), 교파들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우상숭배나 미신 등에 배타적이며 유일신론에 입각해 다신교적 가치관을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또 성윤리 또한 교파들을 가리지 않고 공통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라서, 가족주의를 중시하고 동성애에 대한 터부나 혼전순결, 성적 타락에 대한 반대 등이 교리에 들어가 있다. 또 이슬람과는 달리 많은 기독교 문화권 국가들은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삼는다. 특히 가톨릭과 정교회의 경우는 혼인과 자녀의 양육을 초월자가 신자에게 부여한 일종의 '임무'로 해석하여, 원칙적으로 이혼도 금지하고, 일부다처제를 유지할 경우 7성사 참여를 금지할 정도로 강경한 일부일처제를 지향한다. 축첩제나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신자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성사도 볼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간음중인 상태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장로회 등 개신교 주요종파에서도 일부다처제를 반대하는 기조는 매우 강하며, 구한말 한국에 선교 온 선교사들도 축첩 상태를 유지하는 신자가 새로 입교할 경우 축첩을 포기하고 정실부인과의 결혼관계만을 유지하지 않는 이상 입교 및 세례주기를 거부하는 사례도 매우 많았다.
물론 이것도 지역에 따라 좀 달라서,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기독교는 일부다처제를 용인해 주는 경우도 있다.[64] 그러나 오해하면 안될 것이, 일부다처제를 예외적으로 용인해주는 일부 교파 및 국가도 있긴 있으나, 대다수 기독교 교파에서는 일부일처제를 올바른 기독교적 관습으로 보고 일부다처제를 옳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절대 다수다. 사실 성공회의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인 케이스일 뿐이다. 위에 언급된 케냐에서도 가톨릭,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기독교계가 모두 나서 정부 주도의 일부다처제 법안에 공식적으로 반대하기도 하였으며(또한 기독교인이 혼인성사 등 교회에서 결혼을 원할 경우 무조건 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지키는게 원칙), 일부일처제를 강력히 중시해서 새로 개종해 들어오는 일부다처 및 축첩에 익숙한 현지인들과 의견차이를 보이는 남아프리카 국가들의 가톨릭 선교 사례 등 아프리카의 기독교계도 일단 일부일처제를 우선적으로 원칙시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
구약 성경을 공유하며 율법을 아직 지키는 유대교와 비교하면, 기독교는 구약 율법의 강제성이 신약성경 시대에 와서 의미가 사라졌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십계명을 제외한 구약시대의 율법은 신학적 가치는 있지만 더이상 준수할 의미가 사라진,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완성되어 끝난 문제라는 것. 신자들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구약 시대에는 율법의 준수로 이뤄졌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율법이 아닌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믿음과 행위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기독교 교파들이 공유하는 대단히 중요한 교리다.[65] 이 부분의 교리를 좀 더 정확히 설명하면, 구약 율법 중에서도 신약의 정신과 부합되는 '도덕법'은 여전히 대단히 중요히 여기며(대표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법이나 주일-안식일 엄수, 십계명 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의해 성취되었고 완성되었다고 보는 동물 제사나 복식 규정, 식생활 등의 의식 율법은 강제성과 의미가 더이상 사라졌다고 본다. 때문에 일반적인 주류 교파 기독교인이 구약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돼지고기, 갑각류 등을 먹거나 동물 제사를 더이상 드리지 않아도, 할례를 하지 않았어도, 이슬람이나 바하이처럼 예배 전에 복잡한 세정의식을 하지 않아도, 성 삼위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과 기도하는 생활과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모든 죄악을 피하려는 올바른 양심을 가지고 산다면 구원받는데 교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같은 아브라함계 종교이면서 복잡한 율법 수행을 매우 강조하는 이슬람이나 유대교와 비교해 대단히 중요한 점.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매우 강조하는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할 것과 각종 성사, 미사, 전례, 예배 등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보편교회 신자들에게 있어서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계시해준 '보편적인 구원의 길'이다. 즉 인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도 어렵고 교회의 공적인 지도 없이는 자기주관이나 자기합리화를 통한 죄 등에 빠져 구원받기가 쉽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교리와 성사들을 통해 가장 천국에 가기쉬운 보편적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 따라서 보편교회(가톨릭,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성공회)에서는 어떤 신자가 고의적으로 교회에 소속되지 않고도 개인적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무교회주의'를 배척하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주일미사 참례나 7성사 등의 교회 예식에도 함께해야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교회법에 규정하고 있다. 반면 개신교는 정도의 차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개인의 믿음을 더 중시하고 교회적 형식과 예식의 일원이 되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생활에 있어서는(ex: 생활에 있어 자잘한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유대교나 이슬람보다 어느정도 자유로운 성향이 있다. 식생활에 있어서도 기독교에는 구약 관습을 여전히 중요시하는 재림교회나 여호와의 증인, 일부 독립 교회들이나 오리엔트 정교회 등 일부 종파 외에는 코셔 푸드나 할랄 푸드 같이 '신자들은 이것만 먹어야 한다' 식의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특징[66]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술, 담배, 뜨거운 음료와 카페인을 금지하는 지혜의 말씀이라는 율법이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율법이 아닌 데다 주류 기독교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
전반적으로 성차별이 존재한다. 그나마 점차 시대가 바뀌어 여성을 남성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던 구약의 시대착오적인 율법은 대부분 무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디모데전서 2장을 위시한 여러 성경 구절을 이유로 기독교 내에서 여성의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 하와는 아담의 배필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고, 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여성은 (아이들을 제외한) 남성을 감히 가르치면 안 되며 주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가톨릭과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여성을 성직자로 서품하지 않는다(수도자는 가능하나 수도사제는 될 수 없다). 그러나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 여성 성직자를 제한하는 건 단순히 상술한 성경 구절을 근거로 하는 건 아니고 좀 더 복잡한 신학적 이유가 있다. 신약성경에서도 여성 교회 지도자가 등장하는 데다가 디모데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로부터가 특정 여성을 사도라면서 띄워주기까지 한다. 교리적으로도 남성과 여성은 서로 동등하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여성도 교리교사가 될 수 있고 신학대학에서 교수로서 남성 사제들을 가르칠 수도 있으며 교황청에서는 고위 공직에 여성을 임명하기도 한다. 이들 종파가 여성 성직자를 허용하지 않는 게 성차별적으로 보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성경을 근거로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가르치거나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제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개신교는 일부 보수적인 교단[67]을 제외하고, 여성 목사안수를 허용하는 편이다.
4. 분류[편집]
크게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나뉘며 서방교회에는 가톨릭과 개신교[68], 동방교회에는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69], 오리엔트 정교회, 네스토리우스파로 나뉜다. 이중 동서방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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